그리워찾아와도

그리워 찾아와도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님은 아니뵈네/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붙일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세월/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에는 그대 있어/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서 진종일 언덕길을/ 헤매다 가네.
-「그리워」

  고향(故鄕)을 그리워하는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가슴에 사무치도록 노래한 이은상 시, 채동선 곡 「그리워」. 들으면 들을수록 향수에 젖게 하는 매우 맑고 서정적인 노래이다.
  작곡가 蔡東鮮이 이 노래를 작곡한 것은 日帝治下였던 1933년의 일로, 당시 도쿄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누이동생 蔡善葉이 자신의 독창회에서 初演, 동경 유학생들로부터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본래는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하고 시작되는 鄭芝溶의 「고향」에 곡을 붙였으나, 6·25때 鄭芝溶이 의문의 월북을 한 이후 87년 解禁될 때까지 30여 년간을 이 작품은 공권력의 힘에 의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야 했다. 그래도 50대 이후의 사람들은 鄭芝溶의 노랫말로 불러야 <아, 그 노래구나!> 하고 얼른 알아차리는 것을 보면 이념보다 예술의 생명력이 더 끈질김을 느낄 수 있다.

  洪蘭坡에게서 영향 받아
  작곡가 채동선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으로 대단한 부호였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고향을 위해 국민학교를 설립했고, 많은 땅을 희사하여 길을 넓히고 신시가지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훌륭한 일을 많이 하여 남국민학교에 그의 공적비가 서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채동선은 順天 보통학교와 서울 제일고보(후의 경기高)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를 다녔다.
  그가 음악을 하게 된 것은 洪蘭坡의 영향을 받은 뒤부터이며, 그에게서 직접 바이얼린을 배우기도 하였다.
  일본 유학시절, 그는 취미 삼아 바이얼린 연주를 할 때, 같이 자취하는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다락에 올라가 문을 닫고 바이얼린을 켤 만큼 섬세하고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술·담배는 일절 입에 갖다 대지도 않았다.
  그후 영문학을 팽개치고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위해 1924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베를린 슈테른센 음악학교에서 리히르트 하르처에게서 바이얼린을 , 그리고 빌헬름 클라테로부터 작곡을 공부했다. 그후 콘서바토리움의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것은 1929년의 일.

  여동생 친구와의 인연
  그가 귀국할 때 누이동생 채선엽과 함께 마중을 나온 사람이 역시 梨花女專 동창으로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늘 붙어 다니던 李小蘭 씨. 당시 기숙사 규칙으로는 한 사람만의 외출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나, 이 인연으로 훗날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가 5년 동안의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뒤 조국의 모습은 떠날 때보다도 더 일제의 억압이 심해져 있었다.
  채동선이 영문학을 전공한 채 독일에 가서 음악공부를 하고 가곡 「그리워」를 작곡한 것도 알고 보면 조국을 잃은 설움을 딛고 민족의 고난을 이겨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경기고교에 다니던 18세 때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의 수배를 피해 일본으로 도망쳤고, 독일에서 돌아온 뒤로는 이화여전, 제일고보에서 독일어 강의를 맡았으나, 일제가 창씨개명을 요구하자, 사표를 내고서 직장생활을 그만 두고 말았다.
  그 후 그는 집에서 원예와 작곡을 하면서 우이동에서 닭과 염소를 키우며 그 분뇨로 고급 화초를 재배했다.
  민족정신이 투철했던 그는 항상 한복을 입고 다녔고, 외국 유학생들이 신식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유행했었는데도 불구하고 당나귀를 타고 사모관대를 한 채 구식혼례를 올렸다. 생전에 친구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한번 사귀면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곤 했다고 한다.

  직접 노랫말도 써서 작곡
  판소리의 고장 벌교 출신답게 전통 음악에도 관심을 갖고서 많은 채보를 했다. 「육자배기」를 비롯 판소리 「춘향가」를 12마당까지 모두 채보했으며, 「뱃노래」「진도 아리랑」 그리고 「새야 새야 파랑새야」등 채보 및 편곡한 민요가 각각 12곡이나 된다.
  1945년 고려음악회장을 비롯 한국문필가협회 부회장, 고려작곡가협회 회장, 문총(현 예총) 부위원장, 국립국악원 이사, 예술원 회원을 역임했으며 고려합창협회를 조직 지휘도 맡았었다.
  그의 첫 작곡집은 그가 죽은 지 12주기 되던 해인 1946년 부인 이소란 여사에 의해 「채동선 가곡집」으로 엮어져 나왔다. 이 작곡집에는 30년대에 작곡한 가곡 중에서 鄭芝溶 시로 되어 있어서 발표할 수 없었던 곡 12편을 이은상의 노랫말로 바꾼 것과, 해방 직후 작곡한 곡을 수록했다. 「채동선 가곡집」에 실린 대표곡으로는 이은상의 시에 곡을 붙인 「또 하나의 다른 세계」「갈매기」「추억」「동백꽃」을 비롯 「내 마음은」(金東鳴 시), 「그 강가에」(毛允淑 시), 「모란」(金永郞 시), 「새벽별을 잊고」(金尙鎔 시) 등이다.
  채동선은 이은상과 그리 친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시를 무척 좋아했고, 작곡을 하기 위해 자주 노산에게 시를 청탁했었다고 한다.
  그 후 1980년에 의해 역시 미망인 이소란 여사에 의해 제 2가곡집 「그리워」가 출간되었으며 합창곡집 「한강」도 나왔다. 가곡집 「그리워」에는 채동선이 직접 노랫말을 쓴 「산엣 색시 들엔 사내」라는 가곡 등이 발굴되어 들어 있다. 釜山 피난시절 급성 복막염으로 사망한 蔡東鮮의 유택은 망우리 공원묘지에 있다.
  1982년에 세워진 그의 묘비 뒷면에는 어린시절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조국의 비운을 노래한 불후의 명가곡 「그리워」의 노랫말이 새겨져 있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 임은 아니 뵈네……

글/시인·전 재 승『향토시노래사랑』93. 6

작곡가 채 동 선
(1901~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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